일본이 조선을 끔찍하게 파괴한 전쟁이 끝났을 때.
사쓰마의 강력한 다이묘였던 나베시마는 조선의 도공들을 자신의 고향인 규슈 섬으로 끌고 갔는데.군자지향에 전시 중인 ‘백자철화 어문병.
하지만 그는 조선을 비하하지 않았다.관리들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무능력한 정부 탓에 그나마 존재하던 산업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이토록 매력적인 백자를 만든 도공들의 이름을 전시장에서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시에는 유교적 백자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문소영 기자 임진왜란이 일어난 16세기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
그가 구한말 한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과 일본의 문화 격차가 심각했던 모양이다.중국 ‘전랑(戰狼) 언론의 대표격인 그는 소셜미디어 2476만 명의 팔로워를 이끌고 당국의 의중대로 여론을 추동해 왔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강철동맹을 외치는 한·미 정상을 지켜본 중국의 불안감은 흉기 같은 거친 언사로 뿜어져 나왔다.심지어 윤 대통령은 중국 문화에서 정의하는 소인배로 도덕성이 부족하고 전략적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한다며 중국은 그와 같은 정치인들을 질책하고 결코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 문제와 수출 기업 제재 등 중국이 쓸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다.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과격한 언사다.